엔저현상 이유 - 일본의 양적 완화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엔/원 환율은 코로나 이전 1100원 내외였는데, 6월 3일 마감기준으로 100엔 당 956.64원입니다. 달러/원 환율은 1달러 당 1252원으로 10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엔은 왜 갈수록 싸지는 걸까요?
이 같은 엔저현상은 빠른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미국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의 대규모 양적 완화를 거두고, 금리 인상, 양적 긴축 등 출구전략에 나선 것과는 반대로, 일본은행은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부터 일본은 소위 ‘아베노믹스’라고 하는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을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양적 완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적 완화란
양적 완화란 초저금리 상태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푸는 정책으로, 정부의 국채나 여타 다양한 금융 자산의 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통해 유동성을 조절하는 통화정책과는 다른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일본의 양적 완화 시행
일본은 2012년 9월 미국 연준의 3차 양적 완화에 맞불을 놓으며 기준금리를 0.0~0.1%로 동결하고, 자산 매입을 위한 특별 기금 10조 엔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양적 완화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베노믹스의 시작입니다. 일본이 이렇게 양적 완화에 나선 목적은 의도적으로 엔저를 유도하여 세계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증대시키고,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윤전기를 쌩쌩 돌려 일본은행에서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 내겠다”라고 발언할 정도였습니다.
시장에 엔화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풀리자, 엔 달러 환율은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줄곧 강세였던 엔화는 아베노믹스 시작을 기점으로 점점 약세를 지속하게 됩니다. 2011년 12월 달러당 77.8엔이었던 엔화는 2022년 6월 3일 현재 달러당 130.87엔으로 40.6%의 절하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행은 양적·질적 금융완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양적 금융완화로는 일본은행이 일본 장기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으로, 본원통화 기준 연간 60조~70조엔이 증가합니다. 질적 금융완화로는 일본은행이 상장지수펀드(ETF)에 연간 12조엔, 부동산 투자신탁(REITs)에 연간 1800억엔 투자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6년부터는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양적 완화의 긍정적 효과
양적 완화로 인한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엔달러 환율이 상승해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수출 단가 인하로 수출 기업의 실적이 오르는 것입니다. 지난 2021년 일본 상장기업들은 엔화 약세로 인해 역대 최대의 순이익을 거두었습니다. 도요타자동차는 2조 8501억 엔의 순이익으로 창사 이후 최대 순이익을 기록했고, 소니 또한 사상 최고치인 1조223억 엔의 순이익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엔화 약세로 인한 관광 수익 증가도 긍정적 효과로 볼 수 있습니다. 엔저로 일본 관광 비용이 저렴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2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국제 관광수요가 줄어들어 그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방일한국인관광객 추이만 보더라도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직후인 2013년부터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까지 꾸준히 급증해왔습니다.
일본 양적 완화의 부정적 효과
초반 일본의 양적 완화는 일본 기업의 수출이 늘어 이익이 확대되고 저금리 국채로 재정이 안정화되는 효과를 얻었지만, 최근 미국이 금리 인상에 이어 양적 긴축까지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들어가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실패를 넘어 일본 경제를 폭망하게 할 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급등한 탓에 엔저로 인한 수출경쟁력 상승 효과가 상쇄되었습니다. 또한 수출보다 내수 비중이 큰 일본 경제의 특성상 양적 완화로 인한 엔저는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합니다. 30년간의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임금 상승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일본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물가 상승이 더욱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일본이 양적 완화 못 그만두는 이유
엔저가 점점 심화되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기준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할 텐데, 일본은행은 오히려 양적 완화를 지속해 엔저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일본은행의 ‘연속 지정가격 오퍼레이션’을 실시입니다. 여기서 연속 지정가격 오퍼레이션이란 여러 날에 걸쳐 국채를 정해진 이율로 무제한 매입하는 것으로 일본은행은 새로 발행된 10년물 장기국채를 0.25%의 이율로 3월 29~30일동안 지정가격 오퍼레이션을 실시, 총 6000억엔 규모의 장기국채를 매입했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일본 정부의 막대한 국채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의 국채 잔액은 2021년말 기준 1000조엔(우리돈 9738조원)으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256%에 이릅니다. 금리를 소폭 올려도 일본 정부의 이자 부담이 급증할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국채의 절반은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있는데, 일본은행이 보유한 약 530조엔의 국채 중 94%는 장기국채입니다. 2021년 상반기 일본은행이 보유한 장기국채의 평균 이율은 0.226%입니다. 현재 일본 10년물 장기국채 금리는 0.25%이니 이미 평가손이 발생한 상태입니다. 여기서 금리가 더 오르면, 국채가격이 하락해 일본은행의 국채 평가손은 더욱 크게 불어나게 됩니다. 때문에 일본은행이 장기국채 금리 유지를 위해 지정 가격 오퍼레이션에 나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본에게는 양적 완화에 출구가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금리를 올리지 못하니 엔화 약세를 막을 수가 없고, 악성 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게 됩니다.
일본의 양적 완화 실패 원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된 일본 양적 완화의 최종 목표는 경제 성장입니다. 일본 정부는 양적완화로 인한 엔화 약세 → 주가 폭등 → 투자 증가 → 소비 증가의 선순환을 기대했습니다. 일본이 출구 없이 양적 완화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양적 완화가 투자나 소비의 증가같은 실물 경제의 성장을 불러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엔저현상으로 일본의 수출기업은 역대급 실적을 거두었지만, 늘어난 순익을 설비투자나 임금인상에 쓰지 않았습니다. 2012년 304조엔이었던 일본의 기업 유보금은 2018년 463조 엔으로 1.5배 증가했습니다. 설비투자율은 3%대로 2000년대의 4.2%보다 낮았습니다. 고용에 있어서도 비정규직과 단시간 근로자 고용을 늘렸습니다.
2012년에서 2019년까지 가계소득은 0.6%, 소비지출은 0.3% 늘어나는 데에 그쳤습니다. 기업의 수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노동분배율은 72%에서 66%로 떨어졌습니다. 8년간 아베노믹스 기간동안 일본의 명목 GDP는 492조 엔에서 505조 엔으로 별다른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현재 0%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참고 기사 : 30년간 경제정책 패착·실기 반복하는 日정부, 한국경제, 2022.04.22.)
때문에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양적 완화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전략이지만 아베노믹스는 미래를 개척할 혁신책을 내놓지 못했다.” (일본 경제 저널리스트 오카다 유타카)
일본의 양적 완화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일본의 양적 완화는 자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주변국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주변국으로부터 ‘근린 궁핍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초기 아베노믹스로 일본이 양적 완화를 시행하던 때에 비해서 최근의 엔저 현상은 우리나라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수출경합도가 2015년 0.487에서 2021년 0.458로 0.029 감소하였고(한일 양국의 수출 경쟁 품목이 감소되었다는 의미), 엔화 만큼 현재 원화 또한 평가 절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일 수출기업에게는 엔저가 몹시 큰 타격이겠지만, 아베노믹스가 막 시작된 10년 전에 비해서 일본의 양적 완화가 우리 나라에 주는 충격은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지속되는 엔저현상에 최근 일본 입국 빗장이 풀리면서, 엔화 통장도 늘어나고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향후 일본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그 효과가 우리나라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보며 지켜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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