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천연가스 이야기 (천연가스 오르는 이유)
1960 ~ 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은 북해 가스전으로 천연가스를 자급했다.
북해 가스전을 통한 유럽의 천연가스 주요 생산국은 영국과 네덜란드였다.
그러나 북해 가스전의 고갈과 천연가스 생산이 환경파괴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유럽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제가 발전하며, 유럽의 에너지 수요는 점점 더 증가했다.
유럽은 소련으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했다.
값싼 소련 천연가스는 유럽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고,
소련은 주요 수출품인 천연가스를 통해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의 천연가스 수입은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고 나서도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왜 유럽 입장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더 싼 것일까?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천연가스는 PNG 이기 때문이다.
천연가스는 수송 방식에 따라 LNG와 PNG로 나뉜다.
LNG(Liquefied Natural gas, 액화천연가스)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한 것이다.
이렇게 냉각해 액화된 천연가스는 컨테이너선으로 나를 수 있다.
LNG를 수송하는 선박이 바로 LNG선이다.
LNG는 천연가스를 액화하는 과정서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운송 중에 기화되어 손실될 가능성도 크다.
PNG(Piped Natural Gas, 배관천연가스)는 액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송된다.
천연가스를 별도 처리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든다.
유럽의 경우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파이프를 통해 수송하는 PNG 수입이 더 싼 것이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PNG를 수입했고, 러시아가 유럽에 PNG를 공급하는 가스관은 지속 증가해왔다.
*러시아-유럽 PNG 가스관
① 소유즈 가스관 (우크라이나 경유, 1980)
② 브라더후드 가스관 (우크라이나 경유, 1984)
③ 야말-유럽 가스관 (벨라로스, 폴란드 경유, 2000)
④ 블루스트림 (흑해를 통해 터키로 감, 2003)
⑤ 노르트스트림 (발트해를 통해 독일로 감, 2011)
⑥ 터키스트림 (흑해를 통해 터키로 감, 2020)
⑦ 노르트스트림2 (발트해를 통해 독일로 감, 2021, 미승인)
유럽의 러시아 PNG 수입. 1990년대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유럽은 에너지 수요를 충족, 러시아는 꾸준한 에너지 공급처 확보.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것이었다. 문제는 20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는 줄곧 친러 성향이 집권하였는데,
2004년 오렌지 혁명으로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성향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때 집권하게 된 대통령이 빅토르 유셴코, 총리가 율리아 티모셴코이다.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러시아는 가스관을 무기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압박했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수출 가격을 인상하고, 1월 1일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2009년에는 우크라이나가 가스대금을 체불했다며 역시 1월 1일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2014년에도 우크라이나의 가스대금 미납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와 가스 분쟁을 벌였다.
모두 대외적으로는 가스 가격과 대금 체불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2006년과 2009년에는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권과의 갈등,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압박하기 위한 도구로 천연가스를 무기화한 것이었다.
문제는 당시 유럽은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30%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 중 절반이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소유즈와 브라더후드 가스관을 통해 공급되는 것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갈등 속에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 밸브를 잠가버리면,
유럽 가스 수요량의 15%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난방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높아지는 겨울에 가스 공급 중단은 유럽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매번 1월 1일에 우크라이나 가스관 공급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다행히 당시 가스 공급 중단은 며칠밖에 안 해 유럽에 엄청난 피해는 없었다.)
여러차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무기로 유럽을 위협했지만,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지 않고, 오히려 가스관을 늘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경로를 다양화했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고 흑해를 통해 러시아에서 독일로 직통으로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바로 그 예시이다.
2000년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는 30%였으나,
유럽의 천연가스 수요 증가로 천연가스의 러시아 수입 의존도는 2020년 43.4%로 증가했다.
EU는 탄소배출 제로인 탄소중립을 2050년까지 달성키로 하고,
2030년까지는 탄소배출량을 최소 55% 감축하기로 했다.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석유와 석탄 사용량을 줄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비교적 친환경 에너지인 천연가스 수요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탈원전을 추구해,
천연가스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2022년 1분기 기준 독일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6%이다. (2021년 1분기 12%)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유럽 동부 국가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 유럽 국가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 (2021년 기준)
오스트리아 86%
핀란드 75%
그리스 64%
헝가리 61%
체코 55%
폴란드 50%
독일 49%
그리고 2022년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 속에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또다시 천연가스 공급 중단 카드를 들었다.
러시아는 지난 6월부터 부품 수급 핑계를 대며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통한 대(對)유럽 가스 공급을 기존대비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이에 유럽의 천연가스는 1년 사이에 10배나 급등했다.
그리고 9월 5일 (현지시간) 러시아 정부는 서방국가가 러시아산 원유 상한제 등 제재를 철회할 때까지 노르트스트림을 폐쇄하고,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천연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전까지는 부품 수급, 가스관 수리 등 기술적 결함을 핑계로라도 내세웠는데, 이젠 아예 직접적으로 공급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독일과 영국 등 서방이 대러제재를 해제할 때까지 노르트스트림-1을 폐쇄할 것이다.
다른 기술적 이유는 없으며, 현 사태의 책임은 제재를 남발한 서방에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해 유럽은 에너지 대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독일은 공공기관은 난방은 20℃까지만 가능하고, 겨울철 화장실 온수는 공급되지 않는다.
밤에는 주요 공공장소와 기념물의 조명을 꺼두도록 했다.
이탈리아 역시 공공기관의 냉방온도는 25℃ 이상, 난방온도는 21℃ 이하로 제한했다.
스페인은 공공기관 난방온도를 18℃ 이하로 제한하고, 오후 10시부터는 공공건물의 조명을 끈다.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독일과 프랑스는 가스와 전기를 공유하기로 했다.
독일은 프랑스에 전기를 보내고, 프랑스는 독일에 가스를 공급하는 것이다.
영국은 재정지출을 통해 전기와 가스요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은 러시아에게도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오는 일이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업체인 가스프롬은 매출의 상당 부분이 유럽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가 6월부터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절반 수준으로 축소한 이후,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수출은 58%로 급감했고, 생산량은 3분의 1로 감소했다.
러시아 세금의 80% 가량은 에너지 기업에서 나온다.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면 러시아로서도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된다.
유럽으로의 수출길이 막히자 러시아는 남는 천연가스를 태워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러시아가 소각하는 가스는 하루 1천만 달러(약 133억원) 어치이다.
천연가스는 가스전이 생산을 중단하면 이후 재가동하는 것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수출이 안되더라도 가스를 생산하고, 이를 불태워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적인 손실도 손실이거니와, 환경 피해도 막심하다.
2000년대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에도 줄곧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달랠 방안만 찾던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나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가 컸던 독일은 LNG터미널 건설에 나섰다.
*LNG터미널 : 배로 운반된 LNG를 탱크에 저장한 후 기화기를 통해 액화천연가스를 기체로 변환시켜 발전소와 가정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는 북해 가스전 개발을 시작했고, 헝가리는 국내 천연가스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낮추고 수입처를 다각화하면 미국의 셰일가스의 대유럽 수출이 증가할 것이다. 그동안에는 비용 문제 때문에 유럽이 미국의 LNG보다는 러시아의 PNG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러시아가 천연가스 깡패가 된 지금 비용이 더 들더라도 우방인 미국의 천연가스 수입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6년 유럽에 처음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한 이후, 수출량을 늘려왔다.
이번 러시아의 유럽 가스공급 중단을 계기로 미국은 유럽에서의 천연가스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중국 또한 러시아의 유럽 가스공급 중단으로 인해 이득을 보게 되는 나라다.
유럽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산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을 중국이 싼 값에 수입하는 것이다.
중국은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를 통해 코로나19 후유증인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LNG 중 남는 것을 유럽과 일본으로 재수출해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어부지리로 개이득을 얻게 된 중국이다.
유럽 천연가스 이야기 요약
① 러시아는 그동안 걸핏하면 천연가스 밸브 잠근다, 안잠근다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압박했다.
② 이번에도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며 유럽에 에너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③ 유럽은 이번에 참지 않고, 체 천연가스 개발, 수입처 다각화로 러시아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자 한다.
④ 유럽-러시아간 천연가스 분쟁은 사실 서로에게 다 피해를 준다. 러시아는 수출길 막혀서 남는 가스 버려야 하고, 유럽은 의존도 낮추느라 비용이 많이 든다.
⑤ 천연가스 아사리 판에서 어부지리 이득을 보는 건 미국과 중국이다.
'지또의 슬기로운 생활 > 궁금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의 러시아 거리두기 이유 (2) | 2022.09.26 |
---|---|
독일의 재무장 이야기 (3) | 2022.09.23 |
도쿄 올림픽 개막식 망한 이유와 일본 총리 (0) | 2022.09.18 |
넷플릭스 수리남 실화 마약왕 조봉행 이야기 (0) | 2022.09.13 |
영화 헌트 관람 전 미리 알면 좋은 역사 실화 4가지(스포없음) (0) | 2022.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