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러시아 거리두기 이유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이란 9개국의 정상들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모였다.
9월 16일 정상회의 진행에 앞서, 15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여기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러시아 지지를 기대했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세력에 맞서 그나마 러시아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강대국은 중국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러-중 회담에서 양국 정상의 발언을 보면, 중국은 러시아의 바람대로 마냥 러시아 편을 들고 있지는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우리는 중국의 균형 잡힌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 이 문제에 대한 시 주석의 의문과 우려를 이해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책임지는 대국의 자세를 실현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변화와 혼란이 교차하는 세계에 안정성을 불어넣길 원한다." (시진핑 중국 주석)
여기서 푸틴이 언급한 '시주석의 의문과 우려'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시진핑 주석의 푸틴 대통령을 향한 질책의 의미일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분석에 대해 전했다.
"형, 일찍 전쟁 끝낼 수 있을거라며 왜 우크라이나한테 쥐어 터지고 있어?" 라는 뜻.
9월 21일 푸틴 대통령이 30만 예비군 동원령을 선포하자 중국 외교부는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전쟁을 멈추길 호소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진행한 중-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무제한의 협력을 공언했다.
이날 공동성명에서는 "제약 없는 중국과 러시아 양국 협력 관계에 금지된 영역이란 없다"고 나왔다.
그리고 이후 2월 20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을 시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동참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이러한 제재를 비판하면서도 전쟁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특별군사작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러한 중국의 입장 표면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중국이 정말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 국가라서? 아니다.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중국의 대외무역 수출입 중 최대규모를 갖고 있다.
중국의 대(對)유럽 수출 규모는 미국 다음가는 수준이다.
일찍이 유럽연합은 유럽연합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중국이 간섭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중국과 유럽연합의 무역 규모를 상기시켰다.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규모는 일 3억 유로인데 반해, 유럽연합과의 무역규모는 일 20억 유로이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에너지위기가 대두된 것을 계기로, 유럽은 대체 에너지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세계 태양광 제품 공급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에게 유럽은 놓칠 수 없는 태양광 시장이다. 중국의 태양광 패널 수출에서 유럽의 비중은 작년 46%에서 올해 55%로 더 늘어났다.
중국은 또한 유럽에 대한 공급 중단으로 판로가 막힌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값싸게 수입해, 이를 다시 유럽에 되팔며 어부지리의 이익을 얻고 있다. 중국의 올해 8월 누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은 23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배 늘었다.
중국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싼값에 들여와 이를 다시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 1억 6400만 달러 상당 되팔았다. 수출가는 수입가의 2배 수준으로 부풀렸다.
유럽연합이 중국과 척을 지게 되면,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 야심차게 내세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문제가 생긴다. 일대일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육상과 해상인프라로 연결하는 건설 프로젝트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물류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인프라 연결이 유럽까지 이어져야 중국이 미국에 필적할 패권국이 될 수 있는데 유럽이 돌아서버리면 중국으로서는 이 원대한 목표에 금이 가게 된다.
현재 유럽연합 국가 중 일대일로 참가국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이다.
유럽연합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를 지닌 독일은 아예 대놓고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새 무역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 6년간 독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었지만, 경쟁을 왜곡하는 보호무역을 더이상 용납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영국의 그린필드 투자는 작년 상반기 48억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20억 달러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그린필드 투자 : 기업이 자체적으로 부지확보, 생산시설, 사업장을 구축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직접투자
유럽의 대(對)중국 투자 감소는 부동산문제와 코로나봉쇄로 인한 소비위축에 이어 중국 경제 성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중국의 22년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비 0.4%로 20년 1분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이후로 매우 낮은 경제성장률 수치다.
다음달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3연임을 성사시켜야 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으로서는 어떻게서는 중국 경제를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 때문에 중국 경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연합과 절대 손절할 수 없는 것이다.
9월 20일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시베리아의 힘'가스관을 통한 중국에의 천연가스 공급을 일주일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가스관 점검 작업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일전에 이미 같은 이유로 독일에 대해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 적이 있었고, 현재는 제재를 가한다는 이유로 아예 천연가스 공급을 끊어버린 상황이다.
최근 러시아의 중국 천연가스 공급 중단 또한 중국이 러시아에 대해 미지근한 편들기 때문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심기가 불편에 중국에 대한 가스 공급을 끊었다고 해도 초조할 건 없는 입장이다.
러시아로서는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판로가 막혀, 현재로서는 중국이 유일한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요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러시아는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기존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에 더해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과 등질 수 없다.
러시아에게 무제한 협력 강대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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